이민 사회 단체는 주로 1세들이 운영하고 있다. 2세나 1.5세의 참여율이 저조하다. 어쩌면 저조하다는 표현보다는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할지도 모르겠다. 1세 리더들과는 문화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기가 어렵고, 운영 방식도 80년대 구식이라서 동참하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1세들은 단체운영 방식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단 한 가지라도 바꾸려 하면 저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변화의 필요성은 절감하면서도 변화가 두려운 거다.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런 상황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매우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현상이라 말한다. 그래서 세상은 단 한 사람이 바꾸는 것이고, 그렇게 바뀐 문화가 유행이 되면 이전의 것들이 도태되어 사라지는 것이라 말한다. 왜 단체에서는 집단지성이 별현되지 않는 것 일까?
첫째, 제어 상실(Loss of Control)감 때문이다. 자기가 변화를 주도할 때는 좋은데, 다른 사람에 의해 벌어지는 변화는 위협으로 느낀다.
둘째는 과다 불안(Excess Uncertainty) 때문이다. 다음 단계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함으로써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럴때 주로 쓰이는 변명이 “구관이 명관”이다. 내가 아는 악마와 같이 있는 것이, 내가 모르는 다른 악마와 함께하는 것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셋째는 변화에 대한 결정의 충격으로 주위 사람들이 동화되거나, 흡수하거나 혹은 이들 변화에 대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알아볼 시간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저항한다. 즉 새로운 방법을 방어하거나 혹은 훼손 하게 된다.
넷째는 체면 손상(Loss of Face) 때문이다. 만약 변화를 받아들인다면 과거에 일을 처리한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고, 새로운 환경에서 기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를 거부하는 심리적 이유는 모두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데 이민단체에서 가장 자주 느껴지는 것은 무엇보다 존재감 상실에 대한 불안 심리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중국인이라 말하는 조선족이나, 불과 3세대만에 언어를 잃어버린 고려인, 그보다 이민역사는 짧으면서도 거의 모두가 혼혈이 되어버린 쿠바 동포 사회도 지금 우리처럼 변화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정작 단 한 가지 방식도 바꾸지 못했던 역사를 갖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변할 수 없는 우리 역시 변화 없이 변화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그저, 우리 아이들은 조선족 동포나 고려인 동포처럼 모국에서 푸대접 받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