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배움도 부족하고 부도 쌓지 못한 부족한 사람입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 감히 사임당의 호를 내세운 국제적인 단체를 꿈꾸었고 제3대 회장이라는 무거운 책임까지 맡고 있어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부족함을 극복하고 이렇게 당돌하게 앞줄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제 가슴속에 숨겨둔 간절한 바람과 제 눈앞에 놓인 현실 때문입니다. 70년대 도미하여 남들처럼 외롭고 힘든 이민 생활을 허허벌판 캔자스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다소 늦은 나이에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고, 지금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네 아이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생김새는 이국적이지만 가슴속 깊이에는 엄마의 조국 한민족의 혼이 분명하고 또렷하게 새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국적인 모습의 아들딸은 어른이 되어 빨강 머리 손주를 저에게 안겨주었는데 그렇게 이쁜 손자 손녀 아이들 가슴속에도 한민족의 혼이 새겨져 세상에 오더라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가슴속에 존재하는 수수께끼 같은 한민족의 혼이 무엇인지를 여러 방법으로 묻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때는 대화로, 어떤 때는 분노로. 무언가 다름은 알겠는데 어떻게 다른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아이들보다 우월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열등한 것 같기도 한 자신들의 정체성에 끝없는 의문을 던지는 아이들에게 답다운 답을 해줄 수 없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
저 자신이나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가 아이들에게 만족할 만한 답을 제시해 줄 수 없을 때는 차라리 아이들이 한민족의 혼을 잊고 그저 평범한 미국인으로 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치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 자포자기 심정인지 저의 간절함은 그저 마음속에 깊이 숨겨두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세월은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백 년을 산다 해도 이제는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세월 앞에서 이제라도 아이들에게 진 빚을 갚아주고 싶다는 욕심에 이렇게 용기를 내게 된 것 같습니다.
사임당 소사이어티라는 멍석을 깔고, 지금부터 혼신을 다해 아이들과 손주 손녀에게 진 열 개의 빚을 갚으려 해도 어쩌면 그 중 한두 개의 빚만 겨우 갚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빚을 갚으려 애쓰는 엄마의 실천이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줄 수만 있다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엄마의 진정한 사랑을 사임당 소사이어티라는 유형의 유산으로 라도 남겨 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욕심에 저의 양심을 실천하고자 부끄러움을 이기고 앞줄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임당 소사이어티에 모인 회원님들도 저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으실 것이라 믿어 부끄럽지만 제 마음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꺼내어 보았습니다. 동행해 주시는 회원님들의 우정에 허리 숙여 감사한 마음 드립니다.
설립자/회장 장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