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고 알게 된 미국문화(2)
한인 부모와 이민 온 1.5세와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되어 온 1.5세는 다르다.
미국에 오기 전, 아주 요란한 불량 소년이었다. 단짝 친구와 어지간히 싸돌아다니며 온갖 못된 짓을 다했다. 그 덕에 미국에 왔을 때는 몇 년을 꿇어 다시 중학교에 입학했다. ㅎㅎㅎㅎㅎ 미국문화에는 나이 차가 중요하지 않아 천만다행.
버지니아주 뉴폿뉴스에 소재한 하인스 중학교에 다녔다. 체육 시간에 작은 쪽지에 적힌 “도전장”이란 걸 받아 보았다. ㅎㅎㅎㅎㅎ “방과 후에 한 판 뜨자”라는 말이었는데 영어가 서툴러 “지금 당장”으로 오해하고 벌떡 일어나 쪽지 보낸 놈들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며 싸웠다. 그 넓은 체육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여섯 놈을 ㅎㅎㅎㅎㅎ
비록 학교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그날의 사건 덕에 학생기록부에 “위험 학생”이란 훈장이 붙게 되었고, 덕분에 가는 학교마다 싸움 한번 안 해보고 짱을 먹게 되었다. 그것은 이상한 자신감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미국문화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나는 그런 환경적 여건으로 자신감을 얻게 되었지만, 또래의 미국 아이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그런 자신감을 얻는 것 같았다. 잘 못 하는 일이라도 “그래 멋있다. 잘했어”라고 진심을 담아 응원해 주는 주위 사람들의 격려가 그들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으로 보였다.
한국문화에서 침묵은 금일지 모르겠지만, 미국문화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다. 자칫 침묵은 기회를 엿보는 기회주의자의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클 때가 많다.
창피해 해서도 안 된다. 소속한 사회에 나쁜 기운(Spirit)을 불어 넣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다음번 초대의 기회를 잃게 되기도 한다. 겸손함보다는 적극적인 모습, 침묵을 통해 얼마나 훌륭한 인품을 소지했는지를 보여주기보다는 가볍게 보일지언정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 모습, 자신을 망가트려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위트가 미국인들이 영유하고 있는 문화 같다.
어린 시절, 한국에 사시던 부모님을 떠나 미국인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란 덕에 미국적 가치관이 형성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콜로라도에 있는 대학으로 옮겨 가면서 처음으로 한인 동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내가 얼마나 복잡한 문화적 가치를 가진 사람인지를 알게 된 계기다. 거의 미국놈처럼 살다가 다시 마주친 한국적 가치는 엄청난 혼돈을 가져왔다. 학업에 전념할 수조차 없을 만큼 방황했다.
어린 시절 만들어진 정서와 가치관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1.5세는 한국적 정서를 유지하면서 자랄 수 있지만, 나처럼 부모님의 영향을 덜 받고 자란 1.5세의 문화적 차이는 엄청나다. 미국인 양부모에게 입양 온 1.5세는 더 할 것같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재외 동포 수가 800만으로 늘어났다. 이중문화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절실하다. 문화 적응훈련 개발이 절실하다. 재외동포재단이 이 숙제를 꼭 풀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