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워싱턴 2021년1월15일]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이 18세 이전에 한국 국적 포기 절차를 밟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영사관에 갔는데 너무 복잡해서 못했다”는 답도 있고,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 여권도 없는데 무슨 국적을 포기해요?”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미리미리 포기했다”라고 답하는 사람도 말 끝마무리에는 “내가 그거 했나?”라며 확신에서 불 확신으로 바뀌기도 한다.
복잡한 일이지만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만큼 특별히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다. 그런데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어 문제다. 자칫 아들이 한국 여행뿐 아니라 조상의 묘지에 성묘조차 할 수 없는 패륜적인 법이 만들어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20명 의원이 지난해 12월 17일 발의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 6가지 법안이 통과될 경우 재외 동포 2세 청년들이 실제 한국 땅도 밟지 못하는 기막힌 현실에 놓일 수 있게 된다.
김병주 의원 등이 발의한 ‘공정 병역법’은 입국 금지 가능 대상에 ‘국적을 상실 및 이탈한 남성’을 추가로 포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이민이라는 자연적이고 합법적인 삶의 선택을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로 규정하는 반인륜적인 악법이다. 이 개정안은 “가능 대상”이라는 조건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이민자를 한국에 입국해서는 안 되는 테러 혹은 범죄자 등과 동급으로 규정하는 것이라 치욕적이기까지 하다.
이민은 인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행해져 왔고,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권리다. 오로지 이민을 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고국에 돌아가 조상의 묘지에 성묘조차 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고, 조상에 대한 효를 방해하는 패륜적인 악법이다.
‘공정 병역법’ 개정의 본래 취지는 한국에 거주하는 부모가 자식의 병역의무를 회피하고자 원정출산, 유학, 취업 등의 방식을 이용하여 국적을 이탈하는 자에게 불이익을 줌으로써 공정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좋은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개정안은 이민으로 위장하거나 편법으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문제는 부모 형제 모두가 이민 와서 미국 국적을 갖고 사는 한인 2세들이 주로 피해를 당하게 되는 후유증이 심각한 법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개정법안은 부모 형제가 한국 내에 거주하고 있는 자의 자녀로 제한하여야 하고, 부모 형제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 동포 자녀까지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법은 평등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백인/흑인 청년에게 한국을 여행하거나 사증을 받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면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재외 동포 2세 청년들도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공정 병역법’은 인종차별적이다. 피부색이 다른 민족은 한국 TV에도 출연하고 온갖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환영하면서, 정작 같은 민족인 우리 한인 2세들을 인종적으로 구분하여 언제든 핍박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받아드릴 수 없는 악법이다.
또한, 개정안은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청년이 한국 국적을 상실했거나 포기할 경우 45세까지 한국 국적 회복을 원칙적으로 불허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입대를 회피할 수단으로 국적을 포기하는 불합리한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여 지지할 수도 있다.
단, 개정안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45세 이후에는 국적을 다시 회복 할 수 있음으로 현재 65세로 제한된 이중국적 대상 연령을 45세로 낮추는 안도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에 거주하면서도 자녀의 입대를 회피하기 위해 편법을 저지르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군입대를 회피하기 위하여 온 가족이 이민 오는 바보스러운 사람은 없다. 따라서 재외 동포와 관련한 모든 법은 직계가족이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지를 근거로 만들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