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를 부수고 들어간 미국 바보들 이야기 1탄]
저는 캔자스주 허허벌판에 위치한 Olathe South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이 지역 전체에 흑인은 없었고요. 동양인도 몇 되지 않았는데 형이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왔다는 이유 덕에 저희는 똑똑한 동양인 대우를 받았어요.
미국의 한 가운데에 있는 올레이터 사람들은 차 문도 잠그지 않고 삽니다. 심지어 집 현관문도 잠그지 않아요. 그렇게 범죄도 없는 곳에서 고지식할 만큼 성실하게 사는 미국인들이 어제 워싱턴에 모여들어 의회를 쳐들어간 겁니다. 애증이 교차하고 마음이 아프네요.
올레이터 사람들은 제가 살던 때 까지만 해도 동양인이거나 흑인이라고 차별하지 않았어요. 인종차별보다는 불성실하고, 파괴적이고, 신성한 노동을 기피하는 사람들을 차별하고 미워했죠. 동양인들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된 20대의 우리 형을 무척 존경했고, 비록 영어가 서툴지만 자신 있게 나서는 저를 대장으로 따라준 고마운 친구들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선한 사람들이 분노한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후진적 문화까지 싸 들고 온 이민자들
지난 몇십 년간 수많은 동양인, 아프리카인, 남미인 등이 이민을 오면서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나빠지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서툰 영어의 이민자들이 일하기 시작하면서 서비스 문화가 눈에 띄게 추락하더라고요. 브로큰 잉글리쉬를 써가면서 어쩌면 그렇게도 이기적이고, 불친절하고, 불만스러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사람들 기분을 잡쳐놓고 사회 분위기를 어둡게 만드는지 한심할 정도였어요.
한국에서 동남아 노동자들이 그랬으면 아마 당장 다 내쫓았을 겁니다. 미국인들이 비교적 점잖은 사람들이라 참고 있지만 아마 속은 부글부글 끓을 것 같아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딴 놈이 벌고
올레이터 사람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거나 생산업에 종사했어요. 저도 고등학교 때는 알바로 무전기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죠. 동네 사람 중에는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하고 성실히 일만 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면 된다고 믿었던 거죠. 그런데, 동부 뉴욕에서는 잔머리 잘 굴리는 놈들이 대학 나와 주식으로 돈을 버는 거에요. 공장이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르는 자들이 종이에 공장 이름만 적어놓고 사고팔면서 개평 뜯듣 부자가 되고 주식값이 한계에 도달하면 종이 몇 장 찢어 없애버리고 다른 공장을 또 그렇게 하나씩 부셔나간 겁니다.
꾸준히 돌아가던 올레이터의 공장은 주문이 계속 들어오는데도 그놈의 주식 놀이 때문에 문이 닫히고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일자리를 하나 둘씩 잃고 말았어요. 함께 일하던 공장 주인은 동료직원들에게 먹고살만큼 월급을 주고 싶어 했을 거에요. 그런데 주식으로 회사경영권을 거머쥔 월가의 독점 자본가들은 오로지 이익배당금 키우고 주가 올려 되팔아 먹으려는 욕심에 임금을 낮추고 일자리를 없에고 그랬던 거 같아요.
농사를 짓는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예요. 시카고 선물거래소라는 곳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농부들 뼛골을 뽑아 먹은 거죠. 그런데도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오히려 그런 비생산적인 사람들 로비자금 처먹고 정작 공장이나 농토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권리나 이익은 조금도 보호해 주지 않았어요. 정작 공원과 농민들을 위한 법에는 관심도 없어 합니다. 미국인들 눈에는 다 떼려 죽일 놈들로 보이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자영업자들의 빈곤
올레이터에 사는 제레미는 옷 가게를 여러 개 운영하다가 최근에 모두 문을 닫고 말았어요. 옷이 안 팔려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망한 게 아니라 매장 임대료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 망한 거에요. 한국은 큰 상가건물을 지으면 한 칸씩 사고팔 수가 있잖아요? 미국에서는 못삽니다. 권력을 쥐고 있는 개발회사만 쇼핑센터를 지을 수 있고요. 절대 한 칸씩 나누어 팔지도 않기 때문이에요.
그렇다 보니 한 개의 개발회사가 수십, 수백 개의 대형 쇼핑센터를 소유하고 있고 소매점을 운영해 번 수익금은 고스란히 이들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 많은 상가건물의 재산세까지 소매점 입주자들이 내야하는 그런 황당한 독점자본주의가 벌어지고 있어요. 그런데도 워싱턴의 뻔뻔한 정치인들은 개발자들이 주는 뒷돈이나 받아 드시느라 바빠서 자영업자들이 죽어 나가든 말든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는 게 오늘 미국의 현실입니다.
170여 년 전 헨리 조지라는 경제학자가 바로 이런 토지와 임대주 문제를 지적하고 바꾸려 했는데 정작 그런 사람은 정치판에 얼씬도 하지 못하는 이놈의 기득권, 아주 지독합니다.
분노의 포도
어제, 성조기를 들고 미치광이들처럼 신성한 국회의사당을 침범한 사건이 벌어졌어요. 어떤 이유로도 그건 분명 잘못된 행동입니다. 대통령이란 사람은 서커스단의 크라운처럼 선거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성난 민심에 기름이나 붓는 미국의 모습이 바보스럽게 보이셨을 거예요. 저 역시도 그런 대통령이 이제는 짜증스럽게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올레이터 같은 미국의 중서부의 선량한 사람들이 왜 그런 트럼프에 열광하고 광기를 부리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해요. 사실과 진실을 구별하는 눈이 필요하다는 거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월가의 자본가와 워싱턴의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 놓은 미국의 적폐스런 시스템은 견고하고 튼튼합니다. 이것을 바꾸려면 혁명 수준의 파괴와 실천만이 가능해요. 우스꽝스러운 트럼프에 열광하는 중서부 백인들의 가슴속에는 그런 혁명의 바람이 숨어있고 정의감이 불타고 있는 거랍니다.
성난 그들의 목소리는 잘못된 시스템을 개혁하자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트럼프와 성난 백인들을 저는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반대할 수밖에 없어요. 바로 나 자신이 미국의 독점 자본주의 피해자이면서도 내 등골을 빼먹는 독점 자본가들 편에 서서 제2의 고향인 허허벌판 캔자스주 올레이터 사람들을 욕해야 하는 비참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왜냐면 바로 제가 욕먹고 있는 이민자 중 한 사람이라서 말입니다.
이런 고민 탓에 지난 20여 년간 재외 동포들에게 좋은 미국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자고 계몽운동을 펼치고 한인 자영업자를 상대로 문화 적응 훈련을 주야장천 외쳤던 것인데… 아쉽게도 제가 다른 목적으로 그러는 것으로 오해만 받아 아무런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말았어요. 혼자의 힘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어서 좋은 시절만 허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비록 저는 트럼프를 욕하고 분노의 포도가 되어 광란을 부리는 착한 미국인들을 욕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제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억지를 부려서 라도 바꿔 보려는 (사실 트럼프는 사익을 위한 것이겠지만, 기득권뿌리를 흔들어 민초들을 규합하는 발판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망나니같은 대통령이 고맙기도 하고, 의회를 쳐들어간 올레이터 사람들이 자랑스럽기도 한게 ‘진심’이랍니다. 진퇴양난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