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지망월(見指望月)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 같다.
삶에 불만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니까 트럼프에 대한 말만 무성하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언론이 그렇다. 삼척동자가 봐도 정상이 아닌 트럼프가 그렇게 좋아서 미국 인구의 절반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의사당에서 난동까지 부린다고 정말 생각하는 것일까? 영리한 언론이 정말 몰라서 그렇게 반복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사실을 감추어야 하기 때문일까?
트럼프는 숨겨오던 분노 표출의 도구일 뿐 그의 정책이나 사상을 지지해서 그의 편에 서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트럼프 열성 지지자들로 꼽히는 남부 민병대는 (Militia) 트럼프 이전에도 존재했고, 전국 각지각처에는 각자 다른 이유의 분노를 감춰오던 사람들이 이미 넘쳐났었다.
미국인들은 문명인의 행동 양식이라는 틀에 갇혀 긴 줄에 서서 불만도 표시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높이면 미개인으로 취급되어 화조차 낼 수 없었다. 한때는 그렇게 살아도 괜찮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생활이 각박해지면서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것으로 보는 게 좀 더 솔직하다.
개인의 자유와 주권은 계속 줄어들었고, 종교적 이유로 집단생활을 하던 텍사스 웨이코의 광신도들이 연방경찰들로부터 불에 타 죽는 모습을 기점으로 불만 세력의 저항도 커졌다. 오클라호마 ATF 연방 건물 폭파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벌어진 참사였다. 테러를 막겠다는 이유로 스마트폰의 카메라는 언제나 노출될 수 있는 도청 장치가 되었고 가는 곳마다 CCTV로 모두가 감시당하는 상황은 이들의 분노를 증폭시킬 만 했다.
생활은 더 각박해졌다. 매일 직장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해도 매월 생활비는 부족하다. 월가의 자본가들 수입은 매년 늘어나는데 노동자들의 월급은 오르지 않는다. 가끔은 자동차 할부금도 내지 못해 자동차가 억류되기도 한다. 억류된 자동차를 돌려받으려면 터무니없이 비싼 토잉비와 보관비, 변호사비까지 지불해야 한다. 돈이 없어서 할부금을 못 낸 사람이 할부금의 두세 배나 되는 벌금까지 내야 하는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
소수 극빈층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한 달 벌어 한 달 쓰는 삶을 “Paycheck to Paycheck Living”이라 하는데 무려 80%의 미국인이 여기에 해당하니까. 못 믿으시겠다고? 먹을 음식조차 살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받는 것을 푸드 스탬프라 한다. 1인당 매월 $130 정도 받는다. 카드가 유별나 쓸 때마다 모욕감이 느껴지는 돈인데도 무려 12.5%의 미국인이 받고 있다.
강도 잡으라는 경찰은 선량한 시민들만 잡고있고, 죄 없는 운전자 잡아 벌금 물리느라 바쁘다. 그래서 강도가 늘어나더라도 경찰을 없애야 한다는 사람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강도보다 경찰이 더 지독한 미국.
자영업자들은 임대료 내느라 생활비조차 벌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겉보기 좋은 유명 프랜차이즈 주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월 권리금 상납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니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랜드로드가 받는다.
열 살짜리 아이도 트럼프의 투정을 듣고 웃는다. 그런 사람의 머리에서 획기적인 정책이 나올 거라 기대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의 말 중에 한가지는 분노한 다수 국민들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워싱턴의 폼만 잡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위해 한 일이 뭡니까? 이익집단의 꼭두각시로 자기들 배나 채우는 거 아닙니까? 이 사람들이 적폐입니다. 내가 대통령이라는 힘으로 이 사람들 다 때려잡겠습니다. 기자 나부랭이들이 누굴 위해 떠듭니까. 성난 민심은 치부해버리고 기득권자들 이익을 위해 거짓말만 남발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다 때려 부숴야 합니다.”
트럼프는 그런 기득권을 단 하나도 깨부수지 못했다.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니까. 겨우 중국과의 무역전쟁 정도? 그런데도 50%의 미국인은 트럼프에 환호를 보낸다. 트럼프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자본가 중심의 시스템, 그런 자본가들의 꼭두각시 노릇만 하고있는 정치인들이 싫어서 그런 거라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에서조차 왜 미국인들이 분노하는지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부정선거 때문이다”라고만 말한다. 그래야 분노한 국민들의 진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되고 분노를 다시 꼼꼼 가둬놓을 수 있으니까.
미국에서는 버니 샌더스라는 사람이, 한국에서는 정동영이라는 사람이 진짜 개혁의 칼을 들고나왔었다. 이 두 사람은 정말 제도를 바꿔버릴 수 있는 유능한 인물이다. 기득권이 총결집해 언론을 동원하고 이들을 유배지로 보낸 거나 마찬가지다.
대신, 한쪽에서는 적당히 무능한 사람, 또 다른 쪽에서는 광대 같은 사람을 세워 노이즈 레벨을 높일 수 있을 데로 높여 국민들이 진짜 이슈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볼 때다. 손가락을 보지말고 달을 봐야 한다는 거다. 그러지 않으면 빈번한 국내 테러사건으로 더 큰 재앙을 격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