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대학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미 해군에(예비역) 들어갔다. 여름방학 때 위스콘신 (Great Lakes)에서 약 12주의 훈련을 받았다. 같은 날 입대한 1,000여 명이 80명씩 반을 나누어 훈련을 받았는데 모두 어리버리 한 첫날 기회를 잡아 반장(알팍)을 자처했다.
백인이 약 70%, 흑인이 30%. 동양인은 나 혼자다. 주로 요란스러운 흑인 훈련병들은 백인 훈련병 눈치를 심하게 보면서 황인종 반장인 나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백인 아이들은 쉽게 힘을 합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끼리끼리의 집단을 견고히 쌓는다. 그렇게 한번 뭉치면 잘 깨어지지 않는다. 시작은 요란해도 끝이 약한 흑인 훈련병들과는 달리 백인 아이들은 그렇게 시작은 미약해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집력이 강해지는 특이한 성향을 보인다.
쉽게 흥분하거나 자존심 때문에 무리한 도전을 하지도 않는다. 냉정을 유지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때 단숨에 제압해 버린다고나 할까?
백인 아이들은 반장이 아시안이라고 달리 보려 하지 않는다.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나 잘하는 사람이라면 인종과 상관없이 리더로 인정하고 따른다. 단, 말하는 방식, 억양, 취향 등이 자신들과 다르면 거리를 두고 상종도 하지 않아 매우 냉정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백인 아이들은 인종에 따라 무리를 짓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오히려 인종적으로 무리를 짖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편이다. 인종과 상관없이 가치, 취향, 언어 등이 통하면 모두 하나가 되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백인 아이들은 한번 돌아서면 냉기가 느껴질 만큼 차가워지는데 주로 상식을 완전히 벗어났거나, 억지를 부리거나, 합리성을 상실했을 때 그런 모습으로 돌변해 버리는 것 같다. 백인 아이들은 무서운 면도 있지만 깊이 알면 좋은 점이 훨씬 많은 민족이다.
흑인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의리 좋아하고, 감정표현이 자연스럽고, 치마 두른 여자는 무조건 찔러보고(?) ㅎㅎㅎㅎㅎ 마음도 약하고 눈물이 많은 것도 비슷하다. 잔정이나 인정도 많고.
처음에는 모든 걸 줄 것처럼 뜨겁게 친하다가 한순간 원수처럼 변해 버리는 나쁜 점도 비슷하다. 진득한 맛은 없다.
최근, 미국은 인종 간의 갈등, 흑인폭동, 아시안 혐호범죄 등 인종간의 갈등이 고조되고있다. 이같은 상황을 대비해 문화적응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20여년이나 한국정부와 재외동포재단에 하소연을 했는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부디 안전하게 지금의 사태가 지나가길 바라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