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사임당 소사이어티 설립취지가 옳은 이유
인디애나폴리스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50대 중반을 넘긴 두 “싸나이”들이 다운타운의 어느 폼 나는 길거리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 시켜놓고 길 건너에 멋지게 서 있는 참전용사 기념탑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먹고사느라 바빠서 이곳에 이렇게 차를 세우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기는 처음인 것 같네.” 허탈한 표정으로 친구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이민자라는 핑계로 열심히 살긴 산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 우리가 열심히 잘 못 산 것 같아.”
정말 열심히 잘 못 살아 온 것 같다. 어쩌면 잘 못 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세상이 내 믿음과 정반대의 진실로 가득한 곳이라면 열심히 살아도 잘 못 살 수밖에는 없으니까. 그런 생각에 친구에게 길 건너 높게 세워진 어느 기념탑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저 기념탑을 누가 세웠다고 생각하나? 개인이 세웠을까? 주 정부가 세웠을까?“
“뭔 놈의 질문이 그래. 주 정부나 연방 정부가 세웠겠지.”
“한국인들은 분명 정부가 세웠을 거라고 답할 거야. 그런데 진실은 말이지, 저 기념탑을 민간단체가 세웠을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이야. 한국적 사고로 생각하면 저렇게 거대한 것들은 국가밖에 할 수 없는 일이고 그 많은 돈을 델 수 있는 것도 국가뿐이라 생각해. 그런데 미국적 사고로 생각하면 달라. 위대하고 거대한 것은 당연히 민간이 결정해야 하고 국가는 그런 위대한 국민의 심부름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돈도 민간단체가 모아서 지었을 거야. 문제는 전액을 민간단체가 댄 것은 아닐 테고 칠팔십 퍼센트는 정부가 돈을 내는 형식이라네. 전체 금액으로 보면 민간단체는 10% 정도의 돈만 내지만 주인 행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그게 바로 미국의 민간단체와 한국의 민간단체의 차이야.”
친구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황당해하는 표정이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이라 생각하지만, 멀리에서 온 친구를 배려해 대화 주제를 서둘러 바꾼다.
총 50시간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친구가 기념사진이라며 한 장의 사진을 보내준다. 생각난 김에 기념탑에 대해 찾아서 읽어보았다.
인디에나 참전용사 기념탑은 1875년 조지 랭스데일 이라는 동네 신문기자가 신문 기사를 통해 건의한 것이었고, 동네 참전용사들이 1887년에 협회를 설립하여 $23,380을 모금해서 세우게 된 것이라 기록되어있다. 총공사비는 60만 불 정도 들어갔는데 5% 정도의 돈을 낸 협회가 지금까지도 주인처럼 이 기념탑을 운영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미국적 사고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회계망측한(?) 방식이다. 사고방식의 차이는 이렇게 시스템적 차이를 만들어 내게 되고, 시스템적 차이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차이와 갈등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1세들에 말씀드린다? 2세 자식들과 거의 정반대의 축에서 생각하는 1세 부모들이 아시긴 아셔야 하는 중요한 문제인 거 같은데 말이다. 어려운 문제다.
One Comment
Seungku Kang
사고의 전환을 알려주셨네요
한 나라의 정신적 바탕이 문화로 나타나는데 이것을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죠. 겉으로 보며 즐기는것과 문화속에 흐르는 정신을 이해해야 하는것은 다른이야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