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영어가 서툴던 고등학교 2학년 영어 시간. 아무 주제건 3분간 자신의 주장을 펴고 동료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설득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객기를 부려 “나는 보신탕을 먹는다”를 주제로 발표했고, 강연 전 100% 반대했던 동료 학생의 마음을 강연 후 절반 이상 바꾸어 좋은 점수를 받았다. 다른 수업에서도 선생님들은 하나를 가르쳐 주고 장시간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러다 어느 세월에 진도가 나갈지 갑갑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국 같으면 그런 시간에 10페이지는 진도가 더 나갔을 텐데.
미국 교육은 그렇게 대화형식으로 진행되고, 한국 학생들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진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숙제 역시 이것저것을 찾아 읽고 리포트로 정리하는 방식이고, 암기보다는 자료정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뭘 배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미국교육의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느낀다. 사람들은 주로 교양을 갖춘 지성인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데 교양이 무엇이고 지성이 무엇인지를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미국 교육이 얼마나 잘 짜인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교양이 무엇인가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리 해석되지만 주로, “여러 분야의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라 생각된다. 이 대목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축적한 지식의 정도로 교양인 여부가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의 정도가 교양인인지 아닌지를 가늠한다는 점이다. 보신탕을 먹겠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경청하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교양인의 자세다.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성의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질문이고, 자신의 주장이 정말 옳은 것인지를 뒤 돌아보게 하는 것이 답변이었다. 그것이 미국교육의 핵심이었고 교양있는 미국인들로 만든 것이었다.
미국인들의 모임에 가보면 주로 그날의 Keynote speaker (주요 강연 연사)가 있다. 단체장은 연사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는다. 참석자들은 연사의 짧은 강연을 듣고 강연 시간 만큼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질문은 매우 짧다. 연사의 강연내용의 특정 부분에 대한 보충내용을 묻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연이 끝나면 사교 시간이 시작되고 가벼운 음식과 음료를 나누는데 대화의 내용도 주로 강연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이미 대화의 주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금방 친해질 수도 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고 교양이 갖추어져 가는 방식으로 보인다.
한국문화는 매우 다르다. 자칫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어서 한국인들의 모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지만 대충 짐작은 하실 수 있을 거다. 며칠 전 열린 사임당 소사이어티 모임에 다문화 가정에 대한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무총장님이 기꺼이 의견을 수렴해 주셨고, 좋은 강연이 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수를 보낸다.
지성의 정의는 조금 더 간단하다.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알고자 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을 지성인이라 하니까. 지성의 반대 측에는 ‘야성’ 혹은 ‘행동’이 있는데 지성과 야성을 균형 있게 갖춘 사람을 우리는 매력적인 사람이라 한다. 미국의 교육을 짧게 표현한다면, “교육은 공부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것”이라 말하는데, 학교에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더 많은 교양을 쌓을지를 배우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배우려는 의지가 없는 상태를 ‘무식’이라 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미국의 교육은 교양을 갖춘 지성인을 양성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교양과 지성의 반대편에는 ‘무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 박사학위까지 받는 전문가도 있으니까. 그런 소수 전문가의 검증된 지식이 강연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교양있는 지성인들의 박수를 받으며 채워지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져 세상을 지배하는 일등 국가로 올라설 수 있었다. Keynote Speech가 사임당 소사이어티 모임에 고정된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한인 이민 사회에 좋은 모범이 될 것이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