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부모님을 뵙기 위해 매년 한국을 서너 번씩 다녔는데도 서울과 고향인 군산만 주로 다녔다. 그러다 버스 터미널에서 강릉 행 버스를 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탔다. 처음 가보는 길이지만 겹겹이 싸인 강원도의 산 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바닷가의 큼지막한 호텔에 체크인을 했는데 겨울철이라서 그랬는지 그 큰 호텔에 나 혼자 묶는 느낌이 들었다.
밤새 힘차게 몰려와 내려치는 파도 소리는 최면 음이 되어 무심한 나그네를 깊은 잠에 빠트렸고 아침에서야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널찍한 로비를 지나 한쪽 모퉁이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시켰다. 통유리 창 너머로 보이는 성난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슬픈 사람처럼 보이시네요.” 얼굴이 예쁜 웨이트레스가 묻는다.
“제가 혼자라서요? 우연히 강릉 행 버스가 눈에 띄어 어젯밤에 왔어요. 밥 먹고 다시 서울로 가려고요.”
웨이트리스는 눈을 찡그리며 토라진 아이를 달래듯 움을 걸린다.
“강릉까지 왔으면 정동진을 가든 신사임당의 생가 오죽헌이라도 다녀가시지 않고…’
“사임당이 이 지역 사람이었어요?”
“아저씨 혹시 간첩 아니에요? 오죽헌을 구경하려고 수학여행도 오는 곳인데 그걸 몰라요?”
“네, 어렸을 때 이민을 가서 잘 몰라요. 그래도 사임당의 시 한 소절은 알죠. 千里家山 萬疊峯 (산 넘어 내 고향 천리이건만) 歸心長存 夢魂中 (자나 깨나 꿈에서도 돌아가고파). 내가 이민자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크니까.”
“신사임당은 모든 것을 갖춘 분이라 유명하지만,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죽헌보다는 허난설헌 생가를 가시던데 한번 가 보세요.”
허난설헌?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난설헌의 생가에 가면서 택시 운전기사를 통해 그분의 오빠가 그 유명한 홍길동전을 쓰고 참형을 당했던 허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시의 원조 격인 중국의 내놓으라 하는 학자들조차 고개를 숙였다는 조선 최고의 여류 시인 허난설헌. 나는 그녀를 그렇게 만났다.
한민족 역사를 통틀어 허난설헌의 집안처럼 가족 모두가 천재였던 집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지만, 북인과 남인으로 나뉜 정파 싸움으로 가정은 빈곤했다. 난설헌에게 글을 가르켜준 오빠 허곡은 귀양을 떠나 그곳에서 죽었고,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사지가 잘려 나가는 참형을 당했다. 어린 아들과 딸이 모두 병으로 죽고 허난설헌 역시 27살의 꽃다운 나이에 절명했다.
그놈의 정치가 무엇이기에, 그놈의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이런 천재 여류시인이 한을 품고 병들어 죽게 했을까? 칠거지약이라는 틀에 갇힌 여자로 태어난 한, 정파 싸움의 늪에 빠진 조선에서 태어난 한, 극심한 시집살이에 바람둥이 남편까지 견뎌내야 했던 젊은 여인의 한. 죽음을 맞이한 허난설헌은 동생에게 자신의 모든 시를 불태워 없애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으면 그랬을까?
서울로 돌아가는 고속버스 창 너머에는 올 때 보았던 아름다운 산은 모두 사라지고, 겹겹이 쌓이고 굴곡진 갑갑한 산만 남아 있었다. 그놈의 정치가 무엇이건대, 그놈의 이념이 무엇이건대. 발걸음이 빨리 미국으로 가자고 재촉해 온다.
2 Comments
Seungku Kang
허난설헌을 알게되며 잔인한 정치를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admin
참 가슴아픈 역사같아요. 더 이상은 이런 돌팔매 질이 한국땅에서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