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은 한국 아이들 자라는 모습과 매우 다르다.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다고 판단할 수 없다. 둘 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으니까. 미국 방식이 좋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장세희 총회장이 한국에서 돌아와 공항 마중을 가갔다가 장 회장의 딸 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한인 3세 조카손자들을 바라보며 드는 이런저런 생각을 두서없이 써볼까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조카손자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스쿨버스를 타고 모두 제리 할아버지 집으로 간다. 할아버지는 집 앞마당에 나와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 집에는 수 십년 된 한국 과일나무가 종류별로 심어진 특이한 집이다. 손주 셋이 모두 도착하면 큼지막한 SUV에 태우고 근처의 아이들 집에 데려다준다.
이것이 할아버지에게 주어진 하루 30분씩 두 번의 낙이고 책임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일상에서 매일 경험한다. 할아버지가 선물을 사줘서도 아니고, 위대한 말을 해 주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매일 그 자리에 있어 좋은 거다. “Just being there”가 미국 교육의 근본 철학인 거 같다. 할아버지는 아침과 오후 30분씩 손주들과 보내는 1시간을 위해 학기 동안에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
집 앞에서는 장세희 회장의 딸 세란이가 정원을 가꾸고 있다. 뒷마당에는 야채밭도 만들어 놓았다. 그 주위로 3살짜리 올리비아가 수영복 차림으로 뛰어놀고 있다. 수영장을 몇 차례 들랑거려 추울 것 같은데도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추우면 큰 타올로 몸을 감싸라고 가끔 권해주기만 한다. 할아버지의 SUV가 도착했다. 집 앞에서 기다리던 외할머니와 삼촌 할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란 아이들은 한 놈씩 달려와 반갑게 포옹해 준다.
아이들은 차례대로 엄마와 가볍게 스킨십을 하고 의무 방어(?) 차원으로 경찰관처럼 꼬치꼬치 묻는 엄마의 심문을 받는다. 엄마에게 예의 없이 굴었다간 아빠한테 혼이 날 태니 어쩔 수 없이 짧은 대화시간을 가진 뒤 빛의 속도로 각자의 방으로 사라졌다.
셋째 아이 애마는 옷을 갈아입고 내려와 막내 올리비아와 놀아준다. 올리비아에게는 언니가 최고다. 오랜만에 만난 삼촌 할아버지에게는 게임을 하잔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알게 된 상식 퀴즈다. 지난번 상식 퀴즈에서 패배한 것을 만회하고 싶어 그간 실력을 갈고닦아 다시 도전하는 거다. 조카딸은 머리 뒤에도 눈이 달려 있는지 부엌에서 삼촌과 엄마랑 수다를 떨다가도 뒷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반칙할 때마다 경고를 외친다. 아이들은 그렇게 집 안과 밖을 오가며 뛰어놀고 있다.
사내아이들은 방에 들어가 나오질 않고 있다. 각자의 숙제는 각자 해결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들의 숙제를 매일 검사하지 않는다. 그냥 숙제를 다 했느냐고 묻고 답변을 믿어준다. 만일 숙제를 안 했는데 했다고 답했다면 숙제를 안 해서 혼날 뿐 아니라 거짓말한 것으로 더 크게 혼이 날 테니 거짓으로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숙제를 빼먹으면 학교에서 편지가 날아 올 것이고 결과에 따라 야단을 맞든 칭찬을 듣든 할 것이므로 미국 아이들은 그렇게 책임감을 배워 나간다.
저녁 식사 시간이다. 게임을 하는지 숙제를 하는지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던 사내아이들도 “밥 먹자”는 조카의 한마디 명령에 다시 빛의 속도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저녁 식사 때는 가족 모두 식탁에 모여 감사기도를 해야 하는데 늦게 오는 한 사람 때문에 모두가 기다리는 불편을 끼칠 수는 없어서 서둘러 내려오는 거다. 식사기도는 한없이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아빠가 정해놓은 무서운 룰이라서 어기면 크게 야단을 맞을 수도 있으므로 꼭 지키는 리츄얼이 되었다는게 조카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가정도 아닌데, 참 좋은 교육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삼겹살을 먹는 아이들의 방식도 각자 다르다. 한 녀석은 고기에 소금 기름을 바른 다음 상추에 싸고, 한 녀석은 먼저 상추쌈을 한 다음 상추를 소금 기름에 찍어 먹기도 하고, 또 한 놈은 상추 없는 삼겹살을 먹는다. 아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먹든, 조카딸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식탁에서 조카딸은 아이들이 그간 잘한 일들을 자랑했다. 그걸 듣고 있는 아이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이들에 대한 칭찬과 자랑은 수백번의 잔소리보다 강하다. 외할머니는 너무도 기쁘고 대견하다며 아이들을 칭찬해 주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룰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지켜지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보인다. 정해놓은 룰을 어기고도 빠져나가는 지혜를 익히게 하는 대신, 처음에는 부모가 룰을 정해주고 꼭 지키는 습관을 갖게 하고, 서서히 잘한 일을 칭찬해 주면서 스스로 룰을 정하고 지켜나가도록 하는 것. 칭찬을 받고 나면 자신을 칭찬해 준 가족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라도 자신이 만든 룰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해지는 그런 효과가 있다. 그러다가 가끔, 자신이 정해놓은 룰을 지켜내지 못하고 무너질 때는 곁에서 위로해주고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미국의 칭찬 중심의 아동교육인 것 같다.
한국의 교육방식은 분명 좋은 점이 많다. 교육전문가는 아니지만, 한국의 교육방식을 구분지으라면, 나는 제도권 방식 (Institutionalized)의 교육이라 말하고 싶다. 학교라는 제도권, 학원이라는 제도권, 빈부를 가르는 아파트 단지라는 제도권, 군대라는 제도권에서 끊임없이 “우리”라는 단위로 자신의 존재를 가두어 두어야 하는 교육방식 말이다. 한국식 교육방식은 개인의 성공보다는 단체의 성공을 이루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 생산적일 수도 있다. 개인의 이름은 감추어지겠지만 기업의 위상이 더 높아지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기업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큼 성공적이면서도 노벨상을 받는 개인은 없다.
미국의 교육방식은 지극히 개인 중심의 교육이다. 그렇게 개인 중심의 사고를 갖게하면서도 동시에 영예로움을 뜻하는 “Honor”를 최고의 가치로 가르친다. 영예로움을 위해서는 국가를 위해 주저하지 않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을 만큼 큰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르쳐 주는거다.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영예롭지 못하게 이룬 성공에 대한 가치는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고 배운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비록 실패했다해도 의도와 과정이 영예로우면 실패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고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다시 노력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거다. 그런 이유로 미국을 파산해도 개인이 책임을 지지 않는 기회의 땅이라 부르는 것 같다.
미국의 교육은 학교에서 기초적인 내용을 배우고 교육의 상당 부분을 가정에서 가족을 통해 배우는 방식이다. 학교에서 모든 지식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데 주력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미국 아이들에게 가족은 가르침을 받는 교실인 셈이다. 아빠의 취미가 아들의 취미가 되고, 엄마의 취향이 딸에게 전달되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거다.
그렇다고 미국식 교육 방식이 한국식 보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미국식 교육은 미국에서만 가능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국가의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 안전망이 보장된 부유한 나라에서만 가능한 교육방식이라는 말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미국식으로 교육하면 뜬 구름잡는 교육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미국식 교육방식이 매력적이라고 한국에서 무작정 따라 하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거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지금보다 가난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부자 나라인 일본의 경우, 부자가 되고도 이것을 바꾸지 못해 미래가 불분명해진 결과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창의력을 상실하고 기계적인 인간으로 멈춘 모습이라고나 할까? 한국은 이제 잘 사는 나라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사회적 기준치가 변해야 하는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고등학교를 지금의 대학과 비슷한 방식으로 바꾸어 몇 가지 전공 분야로 나누어 교육해야 한다. 대학처럼 세부적인 전공이 아니라 조금은 더 넓은 범위의 전공화 말이다.
동시에, 방학 등을 통해 미국식 개인주의 사고로 교육받은 미국 아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집단속에서도 빛을 발휘할 수 있는 개인의 개성의 가치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임당 소사이어티 섬머 캠프가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
선두 자리를 지키는 일은 외로운 법이다. 뒤따라오는 국가보다 훨씬 앞서 생각해야 하고 먼저 가 있어야 한다. 모험적이어야 하고 도전적이어야 한다.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 아이들도 그 외로운 자리에서 더 큰 모험과 도전에 익숙해져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한인 후세들도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더 큰 일을 맡아서 해야 할 때다. 인간의 정서는 어린 시절 형성되는 것이므로 섬머 캠프에서 만나는 한국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피부로 느끼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줄 필요가 있다. 사임당 소사이어티가 지금은 큰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겠지만 그런 철학으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면 분명 시대적으로 가장 중요한 책임을 맡아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긴다.